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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시대별 서양 미술

[서양미술사] 이탈리아 역사 속 르네상스(Renaissance)와 매너리즘(Mannerism)

by 루피누나 2024. 4. 1.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 문화 혁신 운동을 일컬어 르네상스라고 칭하며 이 어원의 의미는 '재생'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학 혁명의 토대를 바탕으로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고,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수용을 추구합니다. 신도 인간처럼 표현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그들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의 정신이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시대적 사상운동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이 시기를 거쳐 근세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르네상스의 정신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어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가며 유럽 문화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르네상스의 탄생

 르네상스를 시간적, 지역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곳에서 점진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가 언제 어디서 끝났는지 알아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상이 시작된 중심으로는 이탈리아의 중부인 피렌체라고 보고 있으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던 비잔틴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붕괴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기반으로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왔던 비잔틴 출신 학자들과 기술자의 유입은 그들의 문헌과 고전 문화들을 유통시키는 계기가 되어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탈리아는 이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이슬람, 비잔틴 문화와의 접촉을 유지하여 서유럽과의 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물론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가장 꽃을 피웠던 요인으로 여러 사회적, 지리적 배경이 뒷받침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바로 흑사병의 유행입니다.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의 발전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유독 이탈리아에서 잔혹한 결과를 낳습니다. 도시화가 많이 진행됐던 이탈리아는 흑사병에 매우 취약했고, 1347년 피렌체는 무려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신에게 기도를 올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반인은 30% 정도의 사망률을 나타낸 반면, 신들의 보호를 받는 사제들의 사망률은 40%에 육박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꼈고 신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죽음에 익숙해진 이탈리아인들은 현세의 삶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며 목숨을 잃어가는 노동자들의 가치는 점차 상승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귀족이 아닌 새로운 노동자 계급이 자본을 축적해 나가며 자본주의가 태동하게 되고 르네상스가 더욱더 발전하는 발판이 됩니다. 

 14세기의 침체 시절에 부유층들이 예술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서 르네상스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데 그 대표로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은행업으로 재력을 쌓아왔던 메디치 가문은 예술을 크게 장려하고 사랑하여 모든 유럽의 예술가들이 피렌체로 몰려들게 됩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와 같이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들을 모두 후원하며 르네상스의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습니다.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1503년

르네상스의 쇠퇴와 매너리즘(Mannerism)

 흑사병이 유행하고 정치적 싸움이 지속되던 이탈리아에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은 궁정이나 교황청 등 일부 상위 계급에서 뿐이었고,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미신이 성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유럽의 근대를 이끈 역할을 했지만, 그 시기 여러 도시국가로 갈라진 상황에서 주변 국가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국가의 통일이 늦어지면서 정치, 사회적 근대화는 지연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르네상스 열풍은 모든 유럽으로 퍼져 철학, 인문,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각 나라의 문화를 꽃피운 기폭제가 되었으나 정작 그 출발점이었던 이탈리아는 프랑스 발루가 왕가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경쟁 속에 파묻히고 맙니다.

 이렇게 르네상스가 끝날 무렵, 미켈란젤로를 포함한 젊은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시기에 달성한 완벽에 가까운 과학적이고 회화적 기술에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해부학, 빛, 인간의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등 더 이상 탐구할 것이 없다고 느낀 예술가들은 새로운 목표를 찾으며 기존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모색했는데, 이 과정에서 매너리즘이 탄생하고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신앙에 깊이 빠져든 미켈란젤로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르네상스적 안정감이 무뎌짐과 동시에 다소 격정적인 인물의 모습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비례, 균형,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르네상스와 달리 매너리즘은 왜곡되고 늘어진 구불거리는 현상, 비대칭이거나 부자연스럽게 우아한 구성을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나타난 매너리즘은 이탈리아에서 1530년경에 확산하여 16세기말까지 지속되었으며 이후 바로크 시대로 연결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으며 회화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세히 알아보면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함께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