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스크 예술은 약 650-1200년경 고딕 미술에 앞서 중세 유럽에서 발달했던 미술 양식입니다. 이 시대의 건축이 고대 로마의 반원 아치와 원주를 반영하였음을 내세워 1820년경 프랑스의 학자가 처음으로 '로망'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건축 양식의 용어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 시대의 모든 예술을 통틀어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작과 특징
9-10세기 유럽의 서양 기독교 세계를 위협한 바이킹, 노르만족, 이슬람교도 등의 이교도와 싸움을 그치고 각국의 왕조가 안정되면서 도시나 농촌들이 재건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10세기, 11세기에 들어서며 수도회가 창시되어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전파되었고, 종교 문화운동의 발전과 지역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배를 위한 기능적 측면과 함께 기독교적 세계를 표현하는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상징물로써의 건축을 창조해 내려는 욕구가 로마네스크 양식을 탄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은 그 당대 종교적 사고방식을 교회 건축물과 내부의 조각, 회화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종교적 가치를 나타내는 표현 기법이 주를 이루어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였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며 단순한 기하학에 의해 이루어진 형태로 나타내었습니다. 예술가의 직관이나 재능이 가감 없이 표현되었다기보다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원리가 더 중시된 것이죠. 그리고 그 의미는 성직자들에게 좀 더 이해가 쉬웠던 반면, 일반인들이 대중적으로 접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종교 미술은 곧 권위의 상징이 되어 수도사의 손으로 구현된 그림은 '그림으로 보는 성서'의 성격을 띠게 되어 신앙이 대중화되는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규칙과 비례에 의존함과 동시에 육중한 외관에서 그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 모자이크, 색채, 비싼 재료들 대신 무거운 벽과 거친 표면에 밀도 높게 집중된 조각 등으로 활기를 주며 기하학적 규칙성이 주는 엄격함과 견고함으로 미를 창조해 냅니다. 반원형 아치와 천장, 견고한 기둥과 반원형 볼트 역시 로마네스크 건축물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간 및 동물같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그 자체로 묘사한 로마네스크의 조각과는 반대로 회화의 영역은 그 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간, 양감, 명암, 원근법 등의 수단들은 철저히 무시된 채 초자연적 세계를 주제로 한 그림이 발전합니다. 인간의 형상은 선적이고 움직임의 묘사가 없는 채 이차원적으로 그려졌으며, 이를 실제의 모습으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보다 건축적 구조에 모양을 맞추며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져 형태는 여러 방법으로 왜곡되었습니다.
스페인 로마네스크 건축의 보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스페인의 로마네스크 건축은 11세기말 산티아고 순례길과 깊은 관련을 맺어 탄생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십이 사도의 한 사람인 성 야곱의 유해가 발견된 산티아고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순례자들이 증가하며 그 성지로 가는 길목에는 로마네스크 교회가 많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중에서 11세기 중엽에 건축된 하카의 성당, 후로미스타의 산 마르틴 교회, 레온의 산 이시도르 교회 및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 유명합니다. 카탈루냐 지역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먼 곳에 있었지만, 이탈리아 북부의 영향을 받으며 많은 로마네스크 교회를 세웠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의 로마네스크 회화
프라도 소장품의 주를 이루게 될 작품들을 수집했던 왕가는 이베리아반도의 중세 미술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1912년에 왕립 미술관 후원회가 생긴 후에야 그 위원들이 12세기, 13세기 그리고 14세기의 스페인 미술 작품을 소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페인의 로마네스크 회화는 1948년에 처음으로 미술관에 전시되는데 비록 로마네스크 작품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는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프라도가 소장한 두 점의 벽화 중 한 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마데루엘로의 베라크루스 예배당 벽화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교화 중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걸작 중 하나입니다. 기술적인 면이나 도상학적인 면에서 레리다 지방의 산타마리아 교회와 소리아의 베르랑가에 있는 산 바우델리오 예배당의 천장화와 연관이 깊습니다. 이는 이탈리아의 화풍을 카탈루냐 지방의 로마네스크 화파를 거쳐 카스티야 지방으로 전해 준 화가나 화파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벽화를 원래 있던 예배당의 모습과 흡사하게 재건축하여 전시 중입니다. 옆으로 긴 화면, 둥근 천장과 평평한 막음 벽 위에 구약과 신약 성서의 장면을 뛰어난 도상 스타일로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예배당의 반월 벽 중의 한 곳에 그려져 있었던 아담의 탄생과 원죄 벽화를 재현한 것입니다. 뛰어난 소묘 실력으로 선을 사용해 복잡한 이미지들을 통일감 있게 잘 조화시켰으며 당시 로마네스크 회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11세기와 12세기에 프랑스, 카탈루냐,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 확장되어 건축, 조각, 회화 등으로 꽃을 피운 로마네스크 양식은 12세기 혹은 13세기말 고딕 양식이 탄생하는 초석이 됩니다. 구체적인 형식에 있어 서로 상이했던 두 양식은 전반적인 미학적 개념에서는 비슷한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함께 중세 미술의 큰 줄기인 고딕 양식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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