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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화가 이야기

라파엘로(Raffaello) / 이탈리아 르네상스 / 짧은 생의 화가

by 루피누나 2024. 4. 3.

라파엘로의 생애

 라파엘로 산치오(1483년-1520년)는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의 우르비노에서 화가이자 지성인이었던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라파엘로는 매우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는데, 아주 강렬하면서도 짧았던 전성기 르네상스 역시 그와 함께 꽃 피우고 그와 함께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젊어서부터 조형과 감정, 빛, 공간표현 문제까지 두루 연마하였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16세에 그를 대가의 반열로 올려놓았습니다. 서양 문명사의 한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난 그는 한 시대에 한 명도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들 사이에서 그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라파엘로의 첫 스승은 우르비노의 몬테펠트로 궁정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첫 스승은 '페루지노'라는 화가로, 젊은 라파엘로의 작품에서는 그의 영향을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20세를 갓 넘긴 1504년에 라파엘로는 피렌체에 정착합니다. 그곳에서 당시 르네상스 회화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을 접하게 됩니다. 또한 많은 초상화를 제작하게 되며, 그중엔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유명한 추기경과 성모자상들도 있습니다. 1508년 말에 라파엘로는 '스탄체'로 알려진 바티칸 궁에서 일하기 위해 로마로 불려 가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페루지노, 로토, 소도마 같은 화가들과 같이 프레스코화 제작 일을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라파엘로는 모든 프로젝트의 총 관리 책임자가 되어서 그가 사망하는 날까지 프로젝트를 이끌어 갔습니다. 로마에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과 각종 디자인의 주문까지 받았으며, 그의 공방은 로마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적인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조화, 균형, 절제의 아름다움

 라파엘로는 살아생전부터 비교 대상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브레만테뿐인 전성기 르네상스의 대가로 칭송되었습니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재 예술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유형의 천재였습니다. 완고하고 고독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미켈란젤로와 신비에 싸여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레오나르도와는 성격적인 측면에서도 무척이나 달랐으며, 의학과 건축, 조각 등 다양한 영역에서 큰 업적을 이루었던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라파엘로는 회화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그의 능력을 펼칩니다. 그의 작품들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당대의 가장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달성했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미술적 성취는 요절한 그의 짧은 인생처럼 강렬하게 빛났으며, 그 이후 세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놀라운 회화적 기법은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완벽의 경지에 이르렀고,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성격으로 인기가 많아서 당시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 밑에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바티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작품인 「아테네 학당」이 1509년 로마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해 바티칸 궁전 내부의 벽화와 천장화를 그리던 시기에 탄생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고대 유적과 고전 연구에도 관심을 쏟는 동시에,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서 조형적 파악법을 터득하여 그만의 고전적이고 격조 높은 걸작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구성과 도상의 측면에서 라파엘로의 성모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의 잔재를 뚜렷이 보여주지만 라파엘로만의 독자적 개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젊은 화가가 추구했던 것은 인체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고 면밀한 실체 묘사보다 완벽한 미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라파엘로는 기하학에 근거한 구성법을 사용하였고, 결과적으로 다소 경직된 화면 속에서 자신만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불어넣어 완충하는 능력을 구사하였습니다.

 

프라다 미술관 속 라파엘로의 작품, 「어린양의 성가족」

어린 양의 성가족
Raffaello, 「어린양의 성가족」 1507년, 목판에 유채, 프라도 미술관 소장

 

 

 라파엘로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표현한 '마돈나' 그림들로 무척 존경받았습니다. 모성애를 다룬 테마에 고전적 회화를 완벽하게 터득한 기법과 섬세한 그의 감수성이 잘 묻어났기 때문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배경을 뒤로한 이 작품의 경우 십자가에서 끝나기 전까지 지상에서 예수의 삶을 보호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부모의 딜레마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아눈치아타 성당의 본제단화를 위해 준비한 스케치에서 영감을 받아서 라파엘로가 그 내용을 살짝 수정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어린양을 타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승낙하는 데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는 다르게 표현됩니다. 성모 마리아가 어린양을 타는 아기 예수를 아주 그윽하게 바라보며 성 요셉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낙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종교적 표현에 있어서도 당대의 다른 예술가들과는 다른 그만의 해석 능력을 작품을 통해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