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만큼 미술 세계뿐 아니라 다른 여러 방면에서 후세에 큰 반향을 남긴 화가는 드물 것입니다. 프라도 미술관이 1819년 문을 열었을 때 고야는 아직 살아있었고 그의 전시실에는 단 세 작품만 전시되어 있었으나, 이후 고야의 작품은 쉬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왕실 컬렉션 외에 다른 경로로도 들어왔는데 현재는 미술관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작품이 고야의 것이지요. 150여 점의 회화 작품과 500여 점의 소묘, 판화 컬렉션까지 더해져 한 화가의 수집품으로서 질적이나 양적으로 가장 완벽합니다. 벨라스케스의 경우와 같이 고야를 이해하려면 프라도 미술관의 방문은 필수적일 것입니다.
그림의 시작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고야는 스페인 아라곤 지방에서 금도금 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림 공부를 시작한 후 1763년과 1766년 두 차례에 걸쳐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을 시도하였으나 두 번 다 실패하였고 그 시기 마드리드에서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의 작품에 감동하였습니다. 그 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1771년 다시 사라고사로 돌아오며 그때부터 점점 더 중요한 주문을 받기 시작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왕족, 귀족과 계몽주의자
15년 동안 궁정 소속 화가로 활동한 끝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 카를로스 4세가 즉위하게 되고 고야는 수석 궁정 화가로 임명되어 왕과 왕후를 비롯한 많은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780년대에 고야는 당대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떠올라 많은 귀족에게 주문을 받았고, 그들 중 계몽주의 정치인이나 지식인들과도 친분을 맺게 됩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적, 도덕적, 정치적 개념을 고야와 공유했고, 이들을 통해 익힌 그의 사상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야는 그의 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기를 두 번 맞게 됩니다. 첫 번째는 1793년 앓은 중병으로 인해 청력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기존의 비판적이던 그의 성향은 더더욱 비판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전부터 불평해 왔던 예술적인 자유를 더 갈구하게 됩니다. 두 번째 위기는 그로부터 한참 뒤 스페인의 독립 전쟁(1808-1814)입니다. 그는 스페인의 절대 왕정 대신 프랑스혁명의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자유의 분위기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기대하였으나 이와 반대의 결과를 낳은 전쟁의 참혹함과 잔혹함을 겪으며 그 참상을 작품으로 고발하며 자신의 절망감을 나타내었습니다.
'검은 그림'의 탄생 - 「두 노인의 식사」
여러 위기를 겪으며 왕정의 신임을 잃고 마드리드 생활에 환멸을 느낀 고야는 1819년 외곽에 '귀머거리의 집'이란 뜻의 '킨타 델 소르도'로 이사를 합니다. 그는 1층과 2층에 있는 거실의 벽에 거대한 벽화들로 장식하였는데 모두가 악행, 공포, 불안, 죽음과 같이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이 그림들 모두에 일관적인 도상적 의미가 있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작가의 광기를 띠고 있어 '검은 그림'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19세기말 프라도에 전시된 이후로 이 그림들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앞에서 당혹감을 느낌과 동시에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검은 그림'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충격적인 작품은 자식을 삼키는 모습을 그린 「사투르누스」가 있지만 오늘은 다른 작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두 노인의 식사」입니다. 아주 어두운 배경 위에 한 노인이 식사를 합니다. 그 옆의 노인은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인간인지 죽음 그 자체인지 불투명합니다. 책을 읽는 중으로 보이지만 식사를 방해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함께 지적인 갈망을 함께 표현해 낸 듯한 이 작품을 통해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작가의 심리를 엿볼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느슨하고 자유로운 붓질로 힘차게 칠해져서 어떤 부분은 두꺼운 물감 덩어리가 남아있습니다. 주로 갈색과 회색 톤으로 그려졌는데 강한 표현을 위해 일부러 일그러진 형태로 표현된 인물들은 최소한의 붓질로 완성되었고 보는 이에게는 악몽을 꾸는 듯한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비롯한 '검은 그림'들은 추후 이 집을 구매한 프랑스 남작에 의해 벽화를 캔버스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1881년 스페인 정부에 모든 그림들이 기증되면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됩니다.
이렇듯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에 걸쳐 고야가 살아왔던 시대는 옛 왕정 체제가 끝날 즈음이며 프랑스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사상이 만연한 현대적 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예술은 미적, 도덕적 경계를 초월하여 앞서갔었고, 오늘날까지 신선하고 충격적입니다. 이탈리아 바로크식과 프랑스의 세련된 로코코식 회화로 시작된 그의 초기 작품을 지나 학구적인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거쳐 인간 중심으로, 그들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한 자신만을 개발하며 이후 20세기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초석을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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