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의 역사를 소개한 지난 포스팅에 이어 오늘은 프라도 미술관의 중심이라 볼 수 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생애와 그의 대표 작품인 「시녀들, Las Meninas」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2024.03.27 - [스페인 생활/그림 이야기] -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의 역사 / 세계 3대 미술관 / 마드리드 필수 여행 코스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라도 미술관은 보스, 티치아노, 루벤스, 고야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을 포함한 많은 작품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라도를 대표하는 작가를 한 명만 골라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벨라스케스를 꼽을 것입니다. 그는 스페인 바로크를 대표하는 17세기 유럽 회화의 중심인물로 평가되며, 수많은 후대 화가들에게 영향력을 미친 '화가 중의 화가'라 불리기도 합니다. 1899년부터 벨라스케스의 작품들이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인 본 층에 있는 대성당 홀의 중앙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표작을 포함한 중요한 120점의 작품 중 50점이 전시 중입니다. 그의 대표작이자 벨라스케스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시녀들, Las Meninas」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마드리드의 궁정에서 일하는 동안 왕실의 컬렉션을 접하고 그 작품들을 면밀히 연구하여 합스부르크 왕가의 취향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현재 프라도 미술관에 그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엘 그레코, 티치아노, 루벤스 같은 작가들은 당시 그의 회화가 한 차원 높이 발전할 수 있게 이끈 좋은 스승과도 같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그림은 자유롭고 미묘한 붓 터치를 가진 개성적인 화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죠. 프라도가 개관한 1819년부터 전 세계 방문객들이 이 미술관의 전시실에서 벨라스케스를 발견해 왔고, 그의 명성과 프라도의 명성은 함께 자라 왔습니다.
생애와 작품 활동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599년 6월 세비야에서 태어나 1660년 8월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첫 스승은 세비야에서 화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한 프란체스코 파체코(1564~1644)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회화적 특징은 1623년 마드리드에 정착 후 궁정 화가로 고용되면서부터 발전하게 됩니다. 당시 궁정 화가의 역할은 궁정 내의 초상화 제작이 대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복잡한 구성의 웅장한 역사화도 소화하는 역량을 보였고, 궁정에서 그의 역할은 점점 다양해지고 중요해지게 됩니다. 1628년 루벤스가 스페인과 영국의 평화 협정을 위한 대사의 자격으로 마드리드에 머물게 되면서 벨라스케스의 화실을 같이 쓰게 되었고, 함께 부엔 레티로 궁전의 장식과 펠리페 4세의 사냥 별장인 파라다 탑의 장식 일을 함께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벨라스케스가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 데에는 루벤스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두 번의 이탈리아 여행을 제외하고 벨라스케스는 삶의 대부분을 스페인 궁정에서 보냈습니다. 1630년대는 왕실이 작품 제작에 관심이 많던 시기였으며, 당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했던 스페인 왕권이 그에 걸맞은 화려한 장식으로 표현되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벨라스케스 작품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는 왕가의 초상화, 궁정인, 귀족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표현과 동시에 권력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세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 간에는 어릿광대, 난쟁이들을 '즐거움을 위한 자들'로 여기며 궁전에 함께 살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그들의 모습은 귀족들의 완벽함이나 우아함과 대조되어 그들을 더 돋보이게 했습니다. 그들은 지루한 왕실에 오락거리를 제공했고, 왕실은 불행한 자들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궁정의 다른 화가들보다도 이들을 즐겨 그렸는데, 조금도 대상을 놀리는 인상을 주지 않고 비교적 낮은 지위에 있던 그들을 거의 왕과 동등한 품위로 표현하여 자연이 만든 인간의 형상 그대로를 애정을 품고 그려내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 Las Meninas」
1651년 이후로 궁정인으로서의 그의 책임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그림 그릴 시간이 차츰 줄어들게 되고 병을 얻게 되어 1660년 사망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의 마지막 몇 년에 가장 경이로운 작품들을 제작하였습니다. 그중에는 회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절대적 명작인 「시녀들, Las Meninas」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화풍을 잘 집약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열려있는 동시에 복잡하며, 일상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단순한 장면인듯하면서도 여러 방면에서 숨겨진 의미가 담겨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해 줍니다.
마드리드 왕궁의 널찍한 방 중앙으로 두 시녀가 마르가리타 공주의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의 왼쪽 앞에는 난쟁이 여인이 서 있고, 개를 귀찮게 하는 어린 광대 뒤로 약간 그늘진 곳에 수녀와 시종이 보이며 그 반대편으로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서 있습니다. 벽에 걸려있는 거울 속으로 왕과 왕비의 모습이 비치는데 이는 그들이 그림 바깥인 관람객들 위치에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여러 등장인물이 조화운 구성 속에 잘 배치되어 있는 가운데 그림 바깥까지 확장해 나갈 것 같은 놀라운 깊이와 거리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벨라스케스는 선원근법과 대기원근법에 통달했는데 동시에 원숙한 명암 처리는 사람 사이사이 공간감을 주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벨라스케스가 그림 속에서 왕과 왕비, 공주와 함께 등장하는 것은 그가 귀족 신분으로 고귀한 활동인 회화 작업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무궁무진하며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작가의 인생과 그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된다면 보는 입장에서 더욱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그림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프라도 미술관에 방문할 기회가 되신다면 벨라스케스의 다른 작품들도 직접 감상하시면서 그가 왜 '화가 중의 화가'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는지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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